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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속에 더 단단해진 중국 법인 LSHQ

LSHQ는 후베이성 이창시의 생산법인이다. 코로나19 발원지인 우한과 가까워 한때 조업이 중단되기도 했다. 엄혹한 순간을 현장의 전선인들은 어떻게 견뎌냈을까? LSHQ의 생산관리를 담당하는 노정현 부장에게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LSHQ 생산부총 노정현 부장

2019년, ‘LSHQ 송년의 밤’에서 직원들과 함께
2019년, ‘LSHQ 송년의 밤’에서 직원들과 함께

국가적 재난을 마주하다

LSHQ의 임직원은 400여 명에 이른다.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중국의 춘제 연휴가 3월 초까지 연장됨에 따라 한때 공장 가동이 멈추었다. 생산관리를 담당하는 노정현 부장은 도시가 봉쇄되던 날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중국 정부의 갑작스런 도시 봉쇄로 사전 준비를 할 여유가 없었어요. 중국 정부에서 갑자기 숙소 문을 막아버리고, 관리원들이 집집마다 찾아와 체온을 체크했어요. 엘리베이터마다 경고문이 붙었어요. 마스크, 손소독제 등을 준비하지 못해 2월 한달 동안은 문 밖으로 나서지도 못했어요. 식자재도 부족한 상황이었죠. 3월 초에 구호품을 전달 받기 전에는 남은 음식을 일자별로 나눠 두고 먹었어요. 영화에서나 볼 법한 상황이 닥친 거죠. 감염병에 대한 정확한 정보조차 없어 두려움이 더 컸습니다.”

LSHQ의 모든 직원들은 1월24일부터 3월 13일까지 한 달이 넘는 기간을 집 안에서 격리 상태로 지냈다.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좁은 집안을 맴돌거나 맨손 체조를 하는 것 뿐이었다. 노정현 부장은 내내 소화불량에 시달렸다. 인사부의 이상갑 부장과 영업부 정창원 담당도 다르지 않았다. 한국처럼 인터넷 속도가 빠르지 않고 끊기기 일쑤라 책을 읽거나 한국의 가족들과 통화하며 시간을 보냈다.

“두렵기는 현채인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아무런 정보가 없는 건 똑같았거든요. 격리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승찬 본부장님을 주축으로 주재원과 현채인 팀장들이 단체 리더방을 만들어 소통하기 시작했어요. 이승찬 본부장님은 부임하신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리더십을 발휘해 LSHQ를 이끌었습니다. 단체 리더방을 통해 상호 정보를 공유하고, 직원들의 안전 상태나 근황을 일일이 파악했습니다. 격리 상태로 외롭고 두려운 시기를 극복할 때 서로가 큰 힘이 됐어요.”

모든 역량을 동원하다

2월 말이 되면서 중국 내 다른 지역의 공장들은 하나둘씩 가동을 재개했지만, 후베이성 지역에 대한 봉쇄와 격리는 해제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가까스로 생산을 재개한 2월 13일에는 이미 시간이 많이 흘러 고객들에게 납품해야 할 일정이 빠듯했다.

“격리가 해제되기 전부터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출근할 수 있는 직원을 백방으로 수소문했어요.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는 전문가를 하나하나 확인하고, 건강 검진을 받게 한 뒤 중국 정부의 허가증까지 발급받은 뒤에야 3~4명의 소수 인원이 투입됐죠. 자체 생산이 불가능한 제품에 대해서는 외주 업체를 선별해 진행했고요.”

제품 생산을 모두 마친 후에는 더 큰 문제가 앞을 가로막았다. 도시가 봉쇄되는 바람에 출하가 불가능했다. 이때 도움을 준 것은 이창시였다. 당시 의료 및 긴급 지원 물품에 한해서는 봉쇄 도시 밖으로 이동이 가능했다. 이창시는 의료품 운반 차량에 LSHQ의 제품을 실어 출하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이창시에 하나뿐인 외국 기업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시의 도움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오롯이 전선인들의 몫이었다.

“영업, 생산, 생산관리, 총무, 구매 부서 직원들이 모두 정신없이 일했습니다. 이창시의 도움으로 출하는 해결됐지만, 각 지역마다 다른 격리 규제 때문에 지역별 통행 허가증을 따로 발급받아야 했어요. 부서 팀장들은 하루에도 몇십 곳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중간에 통행이 막히면 통행이 가능한 타 지역에서 외주 업체를 수배해야 했거든요. 현채인 주재원 가리지 않고 모든 직원들이 역할과 책임을 따지지 않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간신히 납기일을 맞출 수 있었습니다. 이 일은 공장 정상화의 도화선이 됐습니다.”

다함께, 미래로, 세계로

후베이성은 아직도 이동이 제한적이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려면 반드시 감염여부를 검사하고 격리 기간을 가져야 한다.

“중국인들은 건강 바코드를 발급받지만, 주재원들은 외국인이기 때문에 감염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인증서를 받아야 해요. 유효기간이 3일뿐이라 계속 갱신을 해야 하죠. 인증서가 있어도 일부 마트는 입장을 제한하는 경우가 있어요. 빨리 상황이 나아져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코로나19 사태 이전의 일상은 어땠을까? 노정현 부장에게 중국 현지 생활에 대해 물었다.

“감염 걱정이 없던 때에는 업무를 마치고 현채인들과 자주 식사를 하며 단합의 시간을 가졌어요. 회사 주변 농가 식당을 자주 찾았는데, 양 한 마리를 통째로 바비큐해서 시골에서 만든 술을 곁들여 먹습니다. 본사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LSHQ지만 건배사는 같아요. 중국인과 한국인이 어울려 ‘다미세(다 함께 미래로 세계로)’를 외칩니다. 이창시에서 이 구호를 외치면 LS전선인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을 정도였죠. 국적은 다르지만, LS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함께 노력하며 든든한 동료애를 쌓았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퇴근 후 모습도 변했다. 모두들 뿔뿔이 흩어져 자택에서 간단히 식사를 할 뿐이다. 즐겁게 단합하던 술자리도 사라졌다. 다만, 모든 변화가 나쁜 쪽으로만 생기지는 않았다. 위기를 겪고 난 뒤 LSHQ는 예전과는 분명히 달라졌다.

“현재 중국은 그 어떤 국가보다 전선 시장의 경쟁이 치열합니다. 하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는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에 성공했습니다. 이번의 성공처럼, 한 마음으로 협업을 하면 글로벌 시장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리라 믿게 됐습니다.”
비 온 뒤 굳어지는 것은 땅만이 아니다. 법인도, 사람도 큰 위기를 함께 극복하고 조금씩 더 강해졌다.

Q1 음식 접대 문화
중요한 손님은 반드시 집에 초대해 대접하는 풍습이 있어요. 회사도 마찬가지예요. 손님을 집에 초대하듯이 고객을 회사로 초대해 대접합니다. 많은 기업들이 회사 내부에 고급 음식점 같은 식당을 만들고 전문 요리사를 고용합니다. 중국은 워낙 넓어 지역마다 특색이 강한데, 각 기업들이 지역 특색에 맞는 음식과 술로 고객에게 어필하죠. 정말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음식이 나옵니다.

Q2 긴 명절 연휴
지역이 넓다 보니 주요 명절 기간이 매우 깁니다. 국가 지시로 토요일 등을 대체 근무일로 변경해 연휴를 지정하고 있죠.

Q3 점심시간은 낮잠 타임
중국인들은 점심시간에 낮잠을 자는 습관이 있습니다. 더운 여름을 이기고, 오후 업무에 집중하기 위한 재충전으로 삼는다고 합니다.